'요리하는 기획자', 김한솔님을 만나다: 부여제철소 방문기
1.
어제 세종마을교육연구소 청년과 마을 팀에서 부여에 다녀왔다. 팀원이신 전용석 선생님의 이우고 제자가 부여에서 창업을 했다고 해서 '청년 창업'을 주제로 탐방을 시작되었다. 창업한 가게의 이름은 '부여제철소'. 부여에 웬 제철소가 있나 했는데, 알고 보니 부여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부여제철소 인근 지도를 살펴보았다. 부여제철소는 '규암마을', '자온길'이라고 불리는 도시재생 구역 안에 있었다. 세간 책방, 수월옥 카페, 각종 공방들. 부여 국립박물관과 낙화암, 백마강은 가 봤지만 부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세종에서 금강 따라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리니 부여제철소가 나온다. 아담하고 아늑한 레스토랑에서 사장님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김한솔 사장님. "오마카세로 준비해 드릴게요. 용석샘과 함께 오셨으니 더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음식이 예술이다. 된장 크림 취나물 아란치니, 연근 멘보샤, 방울토마토 깻잎 파스타, 애호박 라자냐, 양송이 크림 리조또... 모두 부여 시장에서 직접 사 오신 채소와 고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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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과의 대화, 사실상 미니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부여에 내려오게 된 계기, 부여에 와서 만난 사람들과 다채로운 프로젝트... 이야기에 반하고, 이야기하는 사장님 표정에 한 번 더 반한다. 공유 가치에 기반한 꿈을 꾸고 스스로 삶을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딘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부여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부여가 '관계가 살아있고 내 일상을 컨트롤하고 기획할 수 있는 곳'이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경제적 압박이 덜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한다. 또한 '내가 내 기준 잘 세우려면 이 정도의 인구밀도와 타인에게 곁 내 주는 어른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부여에서 살기로 한 후 '살고 싶은 부여, 스스로 만듭니다'를 모토로 사람들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계속 이곳에 살려면 재밌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청년 공간 소행성B'와 '부여 N달 살이'를 통해 청년들을 부여로 모이게 하고, 교류와 경험을 기반으로 정착을 유도했다. 기록과 공유는 중요하기에 '로컬 매거진 부여 안다'와 '교환일기 프로젝트'로 부여 살이의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규암마을 그림 지도 제작', '시민 뮤지컬 부여 비트'와 같은 활동을 통해 유입 청년들이 기존 부여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어우러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부여라는 지역에서 청년들이 모이고, 교류하고, 교류를 돕고, 문화를 창조하는 것. 이것이 부여제철소라는 작은 식당을 거점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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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다.
Q1. 내가 뭘 할 때 불꽃이 튀는지를 청소년기에 발견하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배움이 기획자로서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쳤나?
이우고에서 요리, 목공, 도예, 옷 만들기 등 여러 경험을 했다. 아침마다 쿠키 구워 나눠주고, 요리 수업에서 내가 한 요리를 친구들이 맛 보며 감탄할 때 행복감을 느꼈다. 어떤 경험도 버릴 게 없다.
특히 기획 경험이 많다. 반 전체가 다 같이 연극을 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시나리오를, 어떤 친구는 조명을, 어떤친구는 음악을, 어떤 친구는 배우를 맡았다. 각자 잘하는 걸 찾았다. 뭘 하든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소풍 준비위, 반 꾸미기 준비위, 체준위, 축준위, 졸업앨범준비위... 자치가 중요하다. 의견 내 보고 실제 이뤄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Q2. 부여에서 아기를 낳아 키울 수 있을 것 같나?
못할 것 같다. 일단 산부인과가 없다. 소아과는 대기 줄이 엄청나다. 청년들을 지역에 오게 하려면 인프라가 필요하다.
Q3. 본인을 어떻게 불러주면 좋겠나?
'요리하는 기획자'로 소개한다.비즈니스와 시민사회를 넘나들며 변화를 일구고 실천하는.
Q4. 요리, 레시피 개발은 독학한 건가?
유튜브가 내 선생님이다.
Q5. 20대는 매우 불안한 시기다. 20대에 마음이 어땠나?
정말 많이 불안했다. 그래서 혼란에 대한 전시회를 열었다. '어떤 20대'를 주제로 해서 전시관을 빌려 나의 20대 이야기를 전시했고 친구들과 지인을 초대했다. 그렇게 한 후 힘이 생겼고 부여에 왔다.
Q6. 농촌 지역에서 청년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청년의 존재 자체다.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 어르신들이 좋아하신다. 그리고 일을 계속 저지르는 것이다. 여기서 "일은 저질러. 수습은 우리가 할 테니까."라고 말하는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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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적고 동질성이 높은 농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문화의 창조가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김한솔 기획자는 본인이 직접 이질적인 존재들을 부여에 유입시키고, 유입 인구가 기존의 부여 시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플랫폼과 매체를 만들어냈다. 내가 있는 곳을 곧 교류와 창조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 능동성과 기획력에 깜짝 놀랐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색다른 삶의 방식을 마주할 때마다 고1 학생들을 떠올린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길러줘야 할까? 스스로 함께 일을 벌이고 추진해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정서적 측면에서 회복 탄력성 기르기. 어떤 수업과 어떤 교육과정, 어떤 학교가 이런 역량들을 기를 수 있을지 나 역시 다양하게 경험하고 사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