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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을 꿈꾸다

세상에서 주목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을 꿈꾸다
: 세종마을교육연구소 창립 이후 <청년과 마을> 활동 계획 브레인스토밍
들어가며: <청년과 마을>,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4개월은 새로운 자극으로 신이 나는 시간이었다. 세종시의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로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학교 밖'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학생들이 놓인 공간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청년과 마을>에서 방문했던 세종시 안팎의 청(소)년 단체와 특강,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들은 교육과 사회를 연결시키며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을 하게 했다.
<청년과 마을>은 2022년 9월 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청년, 진로, 학교, 마을 등을 주제로 공부해 왔다. 공부는 텍스트 읽기, 견학하기, 특강 듣기의 세 가지 유형으로 진행되었다. '1인 1책 나눔'을 시작으로, 청년희망팩토리와 군산 청소년자치연구소에 방문해 대표 특강을 들었고, 청년 사회 첫 출발과 마을교육공동체, 진로교육과 관련된 보고서를 읽었다. '세종시 경제와 산업'을 주제로 연구소 전체 특강을 요청해 세종시 전 경제부시장의 강연을 듣기도 했다.
2023년 초, 세종마을교육연구소가 창립된다. 창립 이후 <청년과 마을>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던 12월 28일 저녁, <청년과 마을> 회원 다섯 명(김규리, 김영진, 송영서, 이민선, 이정은)이 모였다. 장소는 조치원 푸른나무작은도서관. 13년 간 관장으로 지역의 지식.문화 공간을 일궈 오신 이민선선생님이 도서관에 초대해 주셨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앉아 책읽는 모습이 떠오르는 아늑한 공간. 우리도 신발을 벗고 전기 장판 위에 둘러 앉았다. 민선샘이 주신 딸기와 차를 벗삼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청년과 마을>의 키워드: 진로 미결정 청소년과 비진학 청년?
영진: 오늘은 <청년과 마을>의 향후 활동 계획에 관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말 신나게 공부했습니다. 새로움과 배움을 동력으로 여기까지 즐겁게 올 수 있었어요. 이제는 무언가를 기획하고 생산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물론, 공부는 병행하면서요. 활동의 방향성을 세울 때 초점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몇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지요. 교육운동, 사회운동 생태계의 '틈새'를 발견하는 일도 필요해요. 이미 세종시와 다른 지역들에 수 많은 마을교육공동체와 청(소)년 단체들이 있어요. 세종시만 해도 많은 단체와 자원들이 존재하지요. 기존의 자원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파악한 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청년과 청소년의 가교 역할, 학교와 사회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겠지요.
민선: '진로 미결정 학생'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어요. 진로 상담을 학원에서 해 주고 있어요. 교육청에 진로진학 상담 프로그램이 있어도 거리 때문에 읍면지역 아이들은 프로그램에서 소외되고 있고요. 읍면교육발전위원회가 지금은 없어졌는데요. 읍면교육의 소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규리: 예전에는 교육청에서 '찾아가는 상담' 하지 않았나요?
영진: 코로나19로 '찾아가는 상담'이 '찾아오는 상담'으로 바뀌었는데, 이제 다시 '찾아가는 상담'을 부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서: 저는 비진학 청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비진학 청년을 위한 사회적 자원과 공동체가 부족한 상황이에요. 진학한 청년들은 대학에서 많은 자원을 얻지만 비진학 청년에게는 그런 공간을 찾기 어려워요. 서천에 청년들을 위한 '삶-기술 학교'가 있어요.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가르치는데요. 청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술 관련 지역 브랜딩도 하고요.
민선: 창원 자유학교가 생각나네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데 고등학교 시기 중 일부를 자유학교에서 보내도 학점 인정이 돼요. 조양, 재봉, 목공 수업 같이 인문계고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죠.
영진: 두 곳 모두 가 보고 싶네요. (민선: 창원은 정말 멀어요. ㅎㅎ)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떠도는 학생들을 위한 정책 제안
정은: 세종에 직업교육 위탁기관을 설립해야 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는데 적응을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중간에 특성화고 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이 직업교육 위탁기관을 찾게 되는데요. 지금은 다 타지역에 위탁기관이 있어서 아이들이 멀리까지 가야 해요. 세종시에도 위탁기관이 있어야 해요. 지역 대학과 연계해서 대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받는 것도 방법이에요. 예를 들면, 한국 영상대에서 프로그래밍, 코딩, 영상 같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거죠. 고대 세종캠, 홍대 세종캠과 연결하는 것도 좋고요.
영진: 동의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무기력해 했던 학생들이 위탁을 가고 나면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얼마 전에도 위탁교육 기관에 방문해서 학생을 만나고 왔는데, 너무나 성숙해져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작년에는 집안 문제도 있었고 진로도 안 잡히고 수업들은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고 해요. 이제는 목표도 생기고 자격증도 땄고 취업도 예정되어 있다면서 여러 계획을 들려주더라고요. 그런데 위탁 기관이 세종에는 없어서 학생들이 서울, 경기, 청주 등 타지역으로 가게 돼요. 세종에 꼭 위탁교육 기관이 설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과 연계하는 방안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해요.
정은: 위탁교육을 위한 건물이 필요한데요. 세종시 연수원이나 조치원 소프트웨어센터를 활용하고 동지역에도 교육원을 유치하여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침 오늘 6생활권 산울 유초중고 옆에 평생교육원이 설립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진: 우리 <청년과 마을>에서 정책 제안을 하면 좋겠어요. 세종시 직업교육위탁 교육기관 설립 및 대학과 연계, '찾아가는 상담' 부활 및 읍면지역 진로교육 방안 수립,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 등?
<청년과 마을> 공동체 만들기
규리: 저는 정책 제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과 마을>의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 중요해요. 청년희망팩토리처럼 공동체적 행사가 필요해요. 캠프 같은 것을 1년에 한 번씩 개최해서 선후배들을 만나고 공동체가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거죠. '청년과 마을 캠프' 1기, 2기, 이런 식으로... 게임, 꿈 인터뷰, 밥, 체육대회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넣고요. 1박 2일 토크 콘서트 페스티벌 같은 컨셉도 좋고요.
영진: 좋은 생각이에요!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활동가들이 재생산되고 지속가능해질 것 같아요. 10년 전쯤 간디학교 교사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는데요. 매년 기수가 있고, 그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 중에서 간디학교 교사가 나오더라고요. 교육과 공동체 만들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죠. 청년희망팩토리에서 세종시 청년 네트워크를 만든 것처럼, <청년과 마을>에서도 '비진학 청년 모여라!' 번개팅 같은 것을 해서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좋겠어요.
학생들을 위험한 사회로 빨리 내몬다?: 학교 안을 바꾸며 학교 밖 기회 만들기
정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진학 청년 문제도 중요하지만, 고2 2학기에서 고3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요. 진로를 못 찾고 자존감 낮은 아이들, 창친과 격려를 못 받는 아이들. 알아듣는 수업은 거의 없고 대안은 없으니 못 그만 두는... 이 아이들에게 위탁교육 등 돌파구가 필요해요.
규리: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학교 밖으로 나가 사회를 아는 게 서글퍼요. 제가 하이텍고에 있을 때 학생들이 고2, 고3이 되면 도제라 해서 현장실습을 했는데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욕 먹어가며 일하는 것이 안쓰럽더라고요.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저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 시간에는 법과 노동 문제도 배우고, 영어 시간에는 생활에 필요한 영어를 배우고, 국어 시간에는 시를 읽고 글도 쓰면서 힘을 주는 공부, 삶을 위한 공부를 했으면 해요. 학교를 제대로 만들어야지, 학교 밖으로 내 보내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정은: 학교 밖으로 내 몬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8시간 의미 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그래요. 대학을 가지 않은 학생이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숙해지더라고요. 레스토랑 알바를 하며 와인 자격증을 따야 하니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흔들리는 가치관을 잡아주는 책이라 이야기해요. 유튜브만 보던 아이인데 자발적으로 책을 보는 모습에 놀랐지요.
민선: 인문계고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삶을 위한 공부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현재는 수업이 이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죠. 수능을 대비해야 하고 등급도 내야 하니, 대부분의 고등학교 수업은 따라가기가 벅차요. 그러니 그냥 앉아만 있다 오는 거에요.
규리: 그렇게 서열 세우는 것이나 선생님들 마인드를 바꿔야 하지 않나요? 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충수업도 해 주고요.
민선: 하루 8시간 앉아 있는 것도 어려운데 방과후에 보충수업까지 듣는 건 어려운 일이죠.
영진: 학교 안을 바꾸면서 학교 밖 기회도 많이 만들자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학교가 잘 안 맞는 학생들이 학교 밖의 다양한 교육 기회로 성장할 수도 있으니, 학생들에게 선택지를 많이 만들어주자는 것이죠.
정은, 민선: 맞아요. 그 말이에요!
고교학점제의 가능성과 특성화고 졸업 이후의 삶
영진: 규리샘이 학교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해요. 지금 인문계 고등학교의 수업은 너무 어려워요. 등급이 나오니 교실 안에서 경쟁을 해야 하고 진도 부담, 수능 부담에 아이들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이 이뤄지기 쉽지 않고요. 경쟁에서 벗어나 진짜 필요한 공부가 맞춤형으로 이뤄져야 해요. 이런 취지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었는데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민선: 진로 결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안에서 또 떠돌게 돼요. 진로 미결정 아이들을 나라에서 지원해 준다면 훨씬 더 빨리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꿈도 없고 칭찬 받을 일도 없는 무기력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학교 안에서 개설되지 않은 수업을 듣기 위해 저녁이나 주말에 하는 캠퍼스형 공동교육과정 수업을 신청하게 되는데요. 학교에 있는 시간도 버티기 힘든 아이들이 번외 시간까지 또 내야 하죠. 또, 지금의 캠공은 주로 대학 가는 아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영서: 특성화고 졸업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특성화고 졸업 후 가는 곳들이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더라고요. 노동조건도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차별적 인식도 존재하고요.
민선: 딸이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어요. 흥미와 진로를 빨리 찾았다고 생각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자기 진로를 찾기 어렵다면 특성화고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은 특성화고 졸업시키고 대학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많아요. 대학에서 배울 것을 미리 배우고 가는 거죠.
나가며: 학교와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청(소)년을 고민하다
뜨거운 토론이 1시간 30분 간 이어졌다. 중간 중간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우리 모두의 초점은 '학교와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청(소)년'이었다. 꿈도 없고, 잘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고, 칭찬 받을 일 없고, 수업에서는 외계어를 듣는 것 같은 학생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갔지만 대학이나 직장이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청년들. 교실과 사회에서 주변화된 청(소)년들의 삶과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마음이 치열한 토론 속에서 느껴졌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청년과 마을>의 초점: 학교와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청(소)년<청년과 마을>에서 할 일 방식: (1) 공동체 만들기, (2) 정책 제안내용: (1) 학교 교육과정과 수업 바꾸기, (2) 학교 밖 기회 만들기, (3) 학교와 학교 밖 자원 연결시키기
세종시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 주제에 집중하는 모임이 또 있을까? <청년과 마을>에서 해 나갈 실천과 그것이 바꿔나갈 세종시의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마음 들썩들썩한 시간이었다. <청년과 마을>이 세상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