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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030 장애청년을 만나다

세종시에 존재하는 2030 장애청년을 만나다
2023.2.13.(월) 17:00~18:00 <청년과 마을> 비정기 모임 기록
(* 이 모임에 참석한 장애청년과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 글을 올립니다.)
장애청년 네 명, 장애청년의 학부모 네 명, <청년과 마을> 회원 네 명이 작은 교실에 모였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는 오후 다섯 시, 우리는 아담한 초등학교 교실에 둘러 앉아 영서샘과 수향샘이 정성껏 준비해 주신 다과를 먹었다. 세종마을교육연구소와 <청년과 마을>이 만들어진 계기를 소개했고, <청년과 마을>이 지닌 문제의식을 말씀드렸다. '세상에서 주목하지 않는 청소년과 청년'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고 있다고. 여기에 장애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부터 했다. 김슬기씨는 서른 두 살이다. 조치원에 산다. 청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종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해금과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세종시교육청 장애인 예술단 '어울림'에서 활동한다. 지적 장애가 있으며 친화력이 좋다. 김승재씨는 서른 살이며 아름동에 산다. 세종누리학교 전공과를 나왔고, 글을 잘 쓴다. 뇌병변장애가 있다. 장애인 일자리에 취업했으나 지금은 쉬고 있다. 맞춤형 일자리가 있었으면 한다. 내 제자였던 길준성씨는 스물 네 살이며 장애인 예술단 '어울림'에서 활동한다. 음악과 운동을 좋아하며 잘한다. 피아노 실력이 전문가 수준으로, 얼마 전에는 엘렉톤 리사이틀도 했다. 박나경씨는 스물 한 살이며 글쓰기가 취미다.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장애인 예술단에서 일한다. 슬기씨와 승재씨는 어머니와 함께 왔고, 준성씨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회의에 참석했다. 나경씨는 혼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회의 장소인 해밀초를 찾아왔다. 청년과 마을에서는 나와 임수향, 이정은, 송영서가 참여했다.
"장애청년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가요?"
1)또래와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
장애청년으로 일상을 살아가며 드는 생각, '세상에 말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준성 어머니인 혜경샘이 먼저 말문을 텄다. 장애인 일자리가 있어도 주로 3급 장애인이 뽑히고 1, 2급은 소외된다며, 1, 2급 장애인 할당제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승재씨는 초중고, 전공과, 복지관에서 모두 지체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적었다는 점과 여가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알바를 받아주는 데가 없다는 것도.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한 것은 승재씨가 '또래'에 대한 주제를 꺼내면서부터다.
승재: 또래 청년들과 어울리고 대화할 기회가 적은 것이 아쉬워요. 또래들과 어울리고 소통하고 싶어요.
슬기모: 친구가 없어요. 비슷한 아이들끼리 소통의 장이 있었으면 해요.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또 부모와만 대화를 하게 되지요.
혜경(준성모): 학령기에는 학교가 있지만, 학령기 이후에는 갈 데가 없어요. 또래 모임이 중요해요.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밀고 당기는 관계 맺기 기술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경험을 하기가 어려운 거죠. 아이들 또래 문화 형성도 어머니들이 해 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청년과 마을>에 비장애청년들이 있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장애청년들이 이 비장애청년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눈빛, 표정 등을 배울 수 있거든요.
수향: 악순환이네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니 또래와 관계 맺기 기술을 못 배우고, 못 배우니 또 어울리지 못하고...
혜경(준성모): 악기 하나, 운동 하나는 평생 해야 해요. 그 프로그램을 제가 직접 짰어요. 지난 몇 년 간 이런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준성이 학교 다닐 때는 운동과 악기를 배울 수 있게 비장애학생과 준성이를 1:1로 연결시켜주는 봉사활동도 기획했었어요.
영진: 준성이 어머니는 '걸어다니는 학교'셨어요. 제가 특수교육과 다닐 때 '발지아'라는 걸 했어요. 발달장애인 지원 아카데미(?)의 줄임말이었던 것 같아요. 장애청년과 특수교육과에 재학하는 비장애청년 스무 명 정도가 한 학기 또는 방학 기간 동안 다양한 것을 배우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사진 전문가를 모셔서 사진 찍는 방법 함께 배우고 실습도 하고... 인근 대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해도 좋겠어요.
기춘(준성부): 비장애청년과 장애청년을 중재하는 기관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었으면 해요.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없는 상황이에요.
2)학창시절의 기억: 외로움
'또래와의 사회적 관계'라는 주제는 장애청년들이 학창시절 겪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깊어졌다.
나경: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많이 당했어요. 선후배들이 저를 도와줬죠. 그래서 선후배가 더 편했어요. 그런데 수학여행과 수련회가 힘들었어요. 같은 학년끼리만 있잖아요. 친구들이 저랑 같은 방 되는 것 싫다고 대 놓고 말하고, 저랑 같은 방 안 되었다고 좋아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슬기: 초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눈물 나려고 해요.
슬기모: 슬기가 지금은 말을 잘 하는데 초등학교 때까진 말을 잘 못했어요. 친구들이 벙어리라고 놀렸죠. 졸업 할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슬기를 따라다녔죠.
승재: 6학년 때,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씩 수학여행을 갔어요. 엄마가 따라가셨죠. 그런데 숙소도 어머니와 저만 따로 배정해 주었어요. 그러다모니 수학여행을 가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도움반 체육시간에는 교실에 남아 있거나 화단에서 기다리게 했지요. 등산도 마찬가지였어요. 소외감을 많이 느꼈어요. 울기도 했거요.
승재모: 제가 수학여행에 따라가게 된 이유가 있어요. 학교측에서 책임자들마저도 승재가 수학여행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어요. 어머니가 동행해야만 갈 수 있다고 하며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했죠.
나경: 수학여행을 가면 애들끼리 놀고 저는 선생님과 함께 있었어요. 혼자 밥 먹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같이 먹자 해서 거기 껴서 먹었고요.
10년 전 쯤 만났던 서울여고 특수학급 학생들이 생각났다. 중학교 때 당했던 학교폭력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던 아이들.
수향: 이런 어려움, 아픈 감정을 나눌 기회가 있었나요?
승재모: 없었어요. 서로 이야기 나누고 "너도 그랬구나."라며 공감해 주는 자리가 있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초중고에서 그런 게 없으니 성인이 되어서 더 힘들어졌어요.
슬기모: 부모에게도 이야기 안 하는 속마음이 있을 거예요. 그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 너무 좋아요. 한 달에 한 번이라는 게 아쉬워요."
영진: 오늘 어떠셨어요?
수향: '외롭다'는 말이 꽂혔어요. 장애청년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어려움, 노하우 등 우리끼리의 소통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비장애학부모와의 소통도 필요하고요. 관계성이 생겨야 특별해져요. 관계를 맺어가고 지역에서도 연계되는 무언가가 필요해요.
슬기: 다시 또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해요.
기춘: 우리 아이들을 위해 연구와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슬기모: 장애청년들이 상처받지 않고 즐겁게 좋은 것만 보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승재모: 설문조사를 해도 비장애청년 중심이었는데 장애청년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는 모임을 만나 감동이었어요. 굉장히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승재: 이 자리 너무 좋아요.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이라는 게 아쉬워요.
혜경: 주로 엄마들 이야기를 듣는데 오늘 장애청년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어요. 장애인 예술단 '어울림'에서 이 친구들이 굉장히 서로 잘 어울려요. 그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상처들을 단단하게 딛고 가야 하는데요. 지금이 적기인 것 같습니다.
나경: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영진: 1박 2일 엠티라도 가서 새벽까지 이야기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앞으로 많은 이야기 나눠요. 길게 만나면서요.
아쉬움 속에서 펼쳐질 미래
사실 모임 전까지는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여기 모이신 분들 안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세종시 안에 우리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서로 느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첫 만남이니 존재를 서로 인지하고 온 몸을 기울여 경청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0분이 이렇게 밀도 있을 수 있다니!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한 시간. 어차피 길게 계속 만날 거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 영서샘과 밥을 먹으며 여운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다. 크게 두 가지다.
1)장애청년을 동료이자 친구로 만나기.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협업하고 서로 기여하기. 주고받는 관계여야 함.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해서는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어려움. 관계가 수평적이며 지속가능하도록 해야 함.
<청년과 마을>: 장애청년-비장애청년이 함께 프로젝트 하기
사회적 기업: '동구밖' (장애청년과 비장애청년이 함께 일하며 만드는 비누 회사) 강의 요청
시민단체: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강의 요청 (<청년과 마을>에서 <오늘의 교육> 2022. 11-12월. '발달 장애와 마을 포럼 - 노동을 말하다' 특집 스터디 예정)
2)자조모임
장애-비장애 청년 소통 모임
장애-비장애 부모 모임
모두가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그 아쉬움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미래가 반짝이며 펼쳐진다.